본문 바로가기
패션

화장이 생겨나게 된 배경

by 부자되게해주세요 2023. 1. 9.

화장이 생겨나게 된 배경

화장이란 주로 얼굴에 분이나 홍을 발라 장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홍은 붉은 볼(볼에), 립스틱(입안) 등 바르는 부위에 따라 구분됩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화장이란 인간의 얼굴을 중심으로 목, 손발, 등 표면에 화장료를 발라 미화하는 것입니다. 광의는 사람뿐만 아니라 물건의 외관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입니다. 보는 사람의 인상을 조작한다고 하는 기능 본질 부분에서는 화장과 장식적인 의복은 동일하고, 원래는 일체적인 것으로, 화장 쪽이 씻어내는 것에 비해, 의복은 탈착 가능하고 벗어도 원형을 유지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화장에 사용하는 것을 주로 몸에 바르는 가루, 액, 페이스트의 종류를 화장품이라고 합니다. 도구류는 화장도구라고 합니다. 화장실을 위한 방은 화장실이래요. 고대부터 일부 사람들이 화장을 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왕족 등이 이미 화장했다고 합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일곱 개의 대죄' 중 하나인 '오만'에 해당한다고 해서 행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대 이집트 네페르티티 흉상의 아이라인을 그렸습니다. 기원전 1200년대경 이집트에서는 사람들이 눈과 입술에 화장을 하고 있는 그림이 발견되었습니다. 투탕카멘 황금 마스크를 예로 들면 눈 주위에 아이라인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아이라인의 원료는 남색광석 라피스라즐리로, 그것을 미세한 가루로 만들어 액체에 녹여 사용했습니다. 여기에는 질병을 매개하는 모기나 파리를 가까이하지 못하는 방충제의 의미도 있었습니다. 또한 노란색 안료를 피부에 발라 선크림을 만들거나 향유로 건조한 피부를 부드럽게 하는 등 사막지대만의 화장도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화장은 시대가 지나면서 신관 등 특권계급의 상징이 되어갔습니다. 현재도 중동 지역에서는 이러한 아이라인을 일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특권계급이 된 왕족이나 신관들은 흰 피부는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증거라며 연백을 사용해 피부를 하얗게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풍습은 납의 유독성을 알리고 18세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평소 단련만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낳는다고 화장처럼 표면뿐만 아니라 발랄한 것은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평소 단련이야말로 아름다움으로 이어진다며 진정한 육체적 아름다움을 추구했기 때문에 화장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일반적으로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상류층은 생활이 흐트러지고 불섭생(특히 식생활의 혼란과 운동의 부족)을 감추기 위해 알렉산드로스 3세(대왕)의 동정으로 오리엔트 문화가 유입되면서 연백 등을 이용한 화장이 이루어졌습니다. 또 기원전 2세기 로마제국 시기 그리스 의사 갈레노스는 현재 콜드크림의 원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후 유럽에서 화장문화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건드리지 말라'는 가르침과 허식은 죄라는 생각에 의해 일시 사라지게 됩니다. 일곱 개의 대죄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죄가 '슈퍼비아 오만'이고, '허식'은 이 가장 무거운 죄 '오만'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의 영향으로 공공연히 화장을 할 수 없게 되어도 특권층 사람들은 피부를 하얗게 보이게 하기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맥주로 세수를 하거나 눈썹을 깎거나 가늘게 하거나 이마의 머리카락 끝을 깎아 머리를 묶음으로써 얼굴의 희끗희끗함을 강조하거나 극단적인 경우 사혈 하여 인위적으로 빈혈이 됨으로써 피부를 하얗게 보이려고 했습니다. 시대는 내려가고 종교혁명의 영향으로 교회의 권력이 약화된 중세 유럽에서는 얼굴에 밀랍을 바르고 그 위에 흰 가루를 두드리는 화장법이 유행했습니다. 이 화장의 시작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로 알려져 대관식 등 교회 의식에서 성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고 귀족들도 이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 화장의 문제점은 밀랍이 녹아 화장이 무너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겨울이나 추운 날씨에도 난방에 접근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흰 가루는 납 흰자 등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납 중독으로 인한 피부에 기미가 생기기 쉬웠다고 합니다. 그것을 속이기 위해 '쓰케보루'가 한때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했습니다. 16세기에는 수은을 사용한 흰 가루가 등장해 피부 피부가 벗겨지고 뾰루지가 떨어져 인기를 끌었으나 수은 중독으로 잇몸이 검어지고 치아가 빠지는 부작용이 있어 입가를 가리기 위해 부채가 유행했습니다. 다시 화장이 유행한 배경에는 유럽과 이슬람 사회의 다툼이 있습니다. 당시 이슬람교는 과학기술이 발달한 데다 부유했고 십자군은 원정지에서 향수와 향유를 유럽으로 가져왔습니다. 또한 이슬람교에서 천연두를 가져오고 그 후유증인 '곰보의 얼굴'을 숨기기 위해 흰 가루를 두껍게 바르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대 유럽입니다. 18세기는 다시 자연 지향이 강해지면서 연한 화장이 유행했습니다. 19세기에는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 병약하고 마른 몸이 인기를 끌면서 끼니를 거르고 밤을 새운 뒤 정맥을 강조하는 푸른 화장이나 황달을 가장한 노란 화장이 유행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과학자와 의약품 제조업체가 화장품 개발에 관여하게 되면서 화장을 저렴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프랑스혁명 등 일련의 시민혁명의 결과 특권계급이 쇠퇴하고 남성들의 화장 풍습은 사라지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완전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1899년에는 인체에 무독한 산화아연을 사용한 흰색 가루가 개발되었습니다. 고대~에도 시대입니다. 위지왜인전에는 3세기경 왜인들이 황화수은이나 산화철 등 붉은 안료(비단)를 몸에 바르는 풍속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무렵 일본에서는 3세기 후반 고분에서 붉은 안료로 얼굴과 몸에 화장을 한 하니와가 출토되고 있습니다. 고분시대의 화장에는 주술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살아있는 인간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의 몸에 바르는 시주가 국내에서도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나라 시대까지는 입술이나 뺨에 바르는 홍은 진하게 강조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겐지 이야기가 쓰인 헤이안 시대에는 홍을 바르는 미의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헤이안 시대에도 홍의 농담에는 유행이 사라졌고, '겐지모노가타리'가 집필된 1008년에서 140년 뒤인 1148년에 쓰인 '구안사년 기'에는 다시 진한 붉은 뺨이 좋다고 합니다. 아스카 시대의 명주실을 통해 대륙과의 교류가 시작되어 홍과 백분 등이 수입되었고, 일본에서도 납을 사용한 백분이 만들어졌습니다. 나라현 원흥사 승려였던 환정이 바친 납가루(백분)를 모치통천황이 크게 기뻐하며 상을 줬다는 가장 오래된 기술이 일본서기에 있습니다. 고사기에는 응신천황 때 젊은 여성이 눈썹을 그리는 화장을 한 기술이 존재합니다. 일본에서는 고대부터 다이쇼 시대에 이르기까지 치흑이라고 불리는 치아를 검게 바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헤이안시대 중기에 편찬된 '왜명류취 초'에는 '파흑'이라고 기록된 치흑의 기술이 있습니다. 헤이안 시대에는 남성도 치흑을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만, 에도 시대에는 치흑은 기혼 여성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검은 치아는 '사람의 색에 물들지 않는다'는 정녀의 증거인데, 이 풍습이 오래 지속된 것은 타닌의 효과로 치조농루를 예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대 축제에서의 어린이용 메이크업입니다. 립스틱은 홍화가 원료인 것이 사용되고 있었습니다만, 매우 비싸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일본의 백분은 액상의 수백 분으로 서양과 마찬가지로 주요 성분에 수은과 납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장기적인 사용자에게는 납 중독이나 수은 중독으로 인한 피부 변색(흰 가루 그을림)이 많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립스틱에 대한 기술로는 헤이안시대 후기에 쓰인 유직고 실서 그림이 돈에 입을 화장하는 도구함을 나타내는 굿치코가 게재되어 있으며, 적어도 헤이안후기에는 립스틱에 상당하는 화장도구가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남성도 공가 헤이안 후기부터 흰 가루 등으로 화장을 하는 습관이 확산되어 막부 말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공가 화장습관의 기원은 유직고 실서인 정장잡기에 따르면 도발상황원정기(1129년~1156년) 무렵 공경이었던 현우원이 풍류를 위해 여성의 화장술을 본떠 눈썹 뽑기나 흰 가루, 치흑, 홍화장을 한 사실이 처음 알려져 같은 시기에 성행한 남색문화와 맞물려 젊은 공가로 화장이 퍼졌다고 합니다. 그 후 공가 화장은 무로마치 시대에는 일반화되었고 천황이나 공가 남성은 원복 앞에 치금을 차고 눈썹을 뽑고 눈썹을 칠하는 눈썹 화장이 계급 표시의 의미로 정착되었습니다. 무도공가를 본떠 화장을 도입하였고 공석에서는 백분율을 바르게 하였습니다. 치게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습관을 붙인 히라라씨에 대해, 다음에 정권을 잡은 겐지는 습관을 들이지 않는 등, 대응이 나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가문과 마찬가지로 권위의 상징이 되어 무로마치 시대에는 쇼군 가문의 남성이 원복 앞에 치흑을 착용하게 되었습니다. 또, 사쓰마의 시마즈 타다요시는 치쿠로를 합니다.

'패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패션용어 종류  (0) 2023.01.10
패션위크의 특색  (0) 2023.01.09
헤어스타일의 종류와 문화  (0) 2023.01.08
패션쇼에 관한 이야기  (0) 2023.01.07
2차세계 대전 이후 패션의 변화  (0) 2023.01.07

댓글